강연경 맥앤지나 기자가 픽한 연예·방송계 핫이슈의 에피소드를 전달합니다.
현실과 가상에서 자유롭게 매력을 펼칠 수 있는 가상 인간, 버추얼 인플루언서 (Virtual Influencer)가 광고계를 점령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가상 인물로, 소셜미디어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동한다.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하고, 팬들과의 교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2016년 버추얼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 (Lil Miquela)’가 미국에서 등장 했다. 릴 미켈라는 자아정체성이 확실한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본인이 ‘바이섹슈얼’인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또한 애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과정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당당하게 공개, 유행하는 각종 댄스 챌린지 등 여느 10, 20대처럼 솔직하고 당당한 행보로 인스타그램 팔로워 284만, 틱톡 팔로워 250만을 보유하고 있다.
일상을 공유하는 SNS 인플루언서는 물론, ‘프로 N잡러’로서 뮤지션과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릴 미켈라는 ‘Hard feelings’ 음원을 발표하며 뮤직비디오에서는 춤 솜씨를 뽐냈으며, 프라다, 샤넬, 켈빈클라인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서도 활약했다. 패션, 뷰티, 잡화, 식품 등 브랜드들의 끊임없는 러브콜로 연간 160억 원을 벌며 전 세계에서 역대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다.
릴 미켈라의 등장 이후 세계 각국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제작되며 다양한 브랜드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전면에 내세우는 새로운 마케팅을 제시했다. 즉,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등장이 유통가의 판도를 뒤집은 것.
연예인 사건·사고 리스크 사전 차단
각종 브랜드들은 왜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모델로 활용할까? 표면적인 이유는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비주얼이나 트렌디한 스타일 등이 브랜드가 포지셔닝한 이미지에 맞아 떨어진다는 것. 그러나 그 이면엔 남다른 속사정도 있다. 가장 큰 이점은 브랜드 이미지 실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가용해 마케팅을 펼쳤다가 사건·사고에 연루돼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
최근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력이나 가격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사회적 공헌에도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곧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연예인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반대로 모델로 활동하는 연예인의 부정적 이슈는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유아인 마약 투약 혐의’로 유통업계의 타격이 만만치 않다. 네파, 무신사를 포함한 패션, 식품, 화장품 등 TV·지면 광고를 포함해 10여 개의 브랜드의 모델이던 배우 유아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며 브랜드는 ‘유아인 지우기’에 급급했다.
홈쇼핑 쇼호스트의 논란도 연일 화제다. 쇼호스트 정윤정과 유난희가 ‘욕설’과 ‘고인 모독’으로 사실상 홈쇼핑 업계에서 퇴출 당하게 됐다. 유난희는 홈쇼핑 방송에서 화장품을 홍보하며 고인이 된 개그우먼을 언급했다.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고인이 된 연예인을 떠올리게 하며 상품을 홍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쇼호스트 정윤정은 당시 판매하던 화장품이 일찍 매진됐지만, 정해진 시간 때문에 방송을 일찍 끝낼 수 없다며 욕설해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유통업계에서는 스타급 연예인보다 파급력이 약할지라도 리스크가 생길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모델로 활용하는 것이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가 미국, 카타르, 두바이에서 촬영한 모습 (사진=로지 인스타그램)
구애받지 않는 시간과 장소
시공간의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장점이다. 모델의 컨디션이나 스케줄, 활동 분야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롭게 마케팅적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 이들에게 불가능한 분야란 없다. 노래, 춤, 스포츠 등 브랜드가 원하는 이미지 구축 및 표현이 가능하니 초기 제작비용이 들더라도 기업 입장에서 장기간으로 봤을 때 훨씬 효율적이다.
국내 1호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는 ‘영원한 22살’이라는 콘셉트로 각종 광고 모델 및 뮤지션, 배우, 여행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로지는 동양적인 마스크에 키 171cm의 서구적 체형을 지닌 밝고 쾌할한 ‘Z세대 여성’으로 키치하고 힙한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SNS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MZ세대의 특성에 맞게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여행을 좋아하고, 핫플레이스에서 인증샷을 찍고, 모델 활동하는 로지의 라이프 스타일이 담겨 있다.
로지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제작됐으며 2020년 활동을 시작했다. 신한라이프 TV 광고에서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춤을 추며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가상 인간’으로 이름을 알렸다. 로지도 다른 버추얼 인플루언서처럼 각종 브랜드의 광고 모델 및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최근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 10회에 강당 안내원 역할로 카메오 출연을 하며 활동 영역을 더 넓혔다.
올해 초 ‘로지의 흑화 버전’인 버추얼 인플루언서 ‘류지’도 공개됐다. 류지는 로지에서 파생된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밝은 성격을 가진 로지와는 다르게 진한 메이크업과 파격적인 룩을 입은채 빌런의 기질이 다소 돋보이는 인플루언서다. 기존 로지의 인스타그램을 류지가 해킹한 콘셉트로 류지의 등장을 알렸다. 즉, 로지는 두 가지 버전으로 활동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인 셈이다.
로지가 데뷔 후 6개월 만에 벌어들인 수익은 약 15억원으로 ‘신한 라이프’ TV 광고 이후 패션 브랜드 20여 곳을 포함한 100건이 넘는 광고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W컨셉, 켈빈클라인, 판도라, 틈새라면 등 모델로 활동하며 수익을 창출했다.
그렇다면 로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까? 지난 3월, 로지는 국내 버추얼 인플루언서 최초로 메타버스 패션위크를 통해 캣워크를 선보였다. 패션위크에서 지난 1월 론칭한 버추얼 패션 브랜드 ‘오로지 컬렉션’과 일로나송과 컬래버레이션 한 의상 2벌도 같이 선보였다.
또 각종 매거진과 화보 촬영도 진행한다. 지난해엔 매거진 맥앤지나와 싱가포르에서 첫 해외일정을 소화하기도. 당시 싱가포르에서 로지와의 화보 촬영을 진행했던 맥앤지나 매거진 관계자는 “실제 모델과 같이 싱가포르에 떠나 현지에서 촬영 후, 몸은 실제 모델 그대로 사용하고 로지 얼굴만 그래픽 기술로 제작했다. 화보는 모델의 표정과 포즈, 옷매무새,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 단 한 컷의 A컷을 위해 수십 가지를 체크해야한다. 하지만 로지와의 촬영은 얼굴 표정을 후작업 때 변형할 수 있어 포즈만 A컷이 나오면 촬영을 마무리했다. 해외 야외 촬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어 수월했다”며 촬영 비하인드를 밝혔다.
이어 “인기 연예인이었으면 스타일리스트, 매니저 등 동반 스태프가 많았을 테지만 로지는 모델 포함 스태프 5명으로 최대 아웃풋을 뽑아낸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며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장점을 뽑았다.
장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마케팅 측면에서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이돌 산업이 버추얼 인플루언서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케이팝의 위상을 높이며 수많은 아이돌을 배출해낸 대한민국의 아이돌 산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아이돌 평균 연습생 기간은 25개월, JYP엔터테인먼트 기준 연습생 20~30명이 7억~9억 원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연습생 때 받는 교육이 평균 1인 월 3천만 원가량의 지출인 셈이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연습생 기간을 마친 후 데뷔할 때까지 미용, 숙소, 스태프 등 유지 비용은 소속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1인 기준 1~2억 원이다. 즉, 데뷔 전에 이미 빚을 지고 시작하는 것.
데뷔 후 톱 아이돌 그룹이 되어 음원 수익이나 광고비로 빚을 청산하면 되지만 이미 레드오션인 아이돌 시장에서 톱 아이돌 그룹이 될 것이라는 장담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이에 넷마블은 넷마블에프앤씨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첫 메타돌 (메타버스 아이돌) ‘메이브’를 1월에 공개했다.
IT 전문 온라인 미디어 지디넷코리아에 의하면 대개 메이브와 유사한 극사실주의 가상 인간을 만들려면 제작 기간 1년 이상, 최소 5억 원에서 최대 9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넷마블은 초기 제작비용을 들여 메이브를 제작, 데뷔 이후 일반 아이돌에게 필요한 미용, 숙소, 식비, 의상, 스태프 등 유지비를 절약할 수 있다. 사생활 문제나 공식 석상에서 실수해 논란에 휩싸일 일도 없어 이미지 손상도 없으며 광고 계약 조항 위반으로 위약금을 물어줄 필요도 없다.
메타돌 메이브는 시우, 제나, 타이라, 마티 4명으로 구성된 가상 인간 아이돌 그룹이며 첫 번째로 발매한 앨범은 ‘PANDORA’S BOX’다. 메이브는 데뷔 이후 2월에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했으며 판도라 뮤직비디오는 2주 만에 10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국내외 K팝 팬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았다. 아이돌 활동을 기반으로 카카오페이지, 카카오웹툰에 연재되는 웹툰 ‘MAVE: 또 다른 세계’에도 등장했다. 메이브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멀티버스 스토리로 멤버들이 대한민국에 불시착해 오디션에 참가, 화려한 아이돌 걸그룹이자 미래를 바꾸는 전사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에 힘입어 메이브의 멤버 마티는 인도네시아 카카오웹툰 앰버서더로 발탁됐다. 마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불시착해 인도네시아어로 소통이 가능한 멤버로 현지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웹툰 ‘MAVE: 또 다른 세계’는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 태국, 프랑스에도 순차적으로 공개될 계획이다. 최근에는 멤버 네 명이 함께 패션 매거진 ‘데이즈드’ 화보 촬영을 하며 컴백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넷마블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에서 4월 말까지 이용할 수 있는 'MAVE: 마을' (사진=넷마블에프앤씨)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메이브의 멤버 제나는 넷마블에프앤씨에서 개발한 PC 게임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에서 신규 영웅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또한 게임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에서 4월 말까지 이용할 수 있는 'MAVE: 마을'은 메이브를 테마로 하는 컬래버레이션 마을을 한정 출시했다. 이 효과로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 10위를 기록했다.
낮은 리스크로 극대화의 홍보 및 매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활약과 유통업계의 러브콜은 지속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이현우 교수는 “가상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경험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라며 “가상 세계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나 콘텐츠를 제작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상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인플루언서의 특성이 소비자 반응에 미치는 영향: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이현우, 2019년)
[맥앤지나=강연경 기자 magajina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