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예능이 더 독해졌다. 부부 예능의 이야기다. 관찰 카메라 안엔 핑크빛 무드가 아닌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의 모습이 담긴다. 이들은 부부간의 갈등을 털어놓고 이혼을 고민한다거나 가상으로 이혼을 체험한다.
최근 방송가에는 위기의 부부를 상담하는 포맷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를 비롯해 ‘금쪽상담소’에서 활약한 오은영 정신건강의학박사를 내세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하 ‘결혼지옥’)’을 필두로 위기의 부부를 다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겼다.
SBS Plus는 3쌍의 부부가 합숙하며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는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이하 ‘당결안’)’를, MBN은 10대에 부모가 된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3(이하 ‘고딩엄빠’)’를 방영 중이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선정성, 사생활 침해 등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매회 화제를 모으는 중. 또 다른 방송사 역시 이 기류에 합세한다. 티빙은 오는 5월 ‘결혼과 이혼 사이2’ 공개를 앞뒀고, TV조선에서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흥행시킨 서혜진 PD의 제작사 크레아스튜디오 역시 ‘쉬는 부부’를 제작한다고 예고했다.
■결혼·이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방송가는 왜 ‘이혼 예능’을 택했을까? 관찰 예능의 진화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짝짓기 예능’이라 불리는 연애 예능, 가족들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담긴 육아 예능,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이어 더 리얼한 장면을 담을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하다는 것.
‘부부의 사정은 두 사람만 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이혼 사유는 부부만의 사적 영역으로 통한다. 이혼이라는 한가지 결과에 다다랐지만, 사유는 저마다 다른 게 이혼이라 그만큼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당사자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갔을 수도, 당사자가 아닌 제 3자가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한 결과라는 측면도 있다. 과거와 달리 결혼이 필수적이지 않고, 결혼만큼 이혼도 선택이라는 가치관이 반영되면서 이혼을 공감과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돼 자연스레 관련 예능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결혼한 4쌍 중 1쌍이 이혼한다는 통계 수치에 따르면 이혼은 드문 일이 아니고, 이혼을 고민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이 같은 소재에 관심을 기울일 이들은 더 늘어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이혼 뒤 성숙한 관계로 발전에 기여
변한 사회적 분위기만큼 이혼 예능 등장 초기 프로그램을 향해 거부감을 드러내던 이들도 막상 예능을 시청한 뒤엔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혼’을 최초로 다룬 예능인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다.
이혼한 부부가 만나 묵은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날 선 말이 오가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진정성은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냈다. 지난 2007년 이혼한 이영하와 선우은숙은 이혼 후에도 명절이나 생일 등 가족 모임을 함께 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두 사람이 가슴 속 응어리를 푼 것은 방송을 통해서다. 선우은숙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결혼생활 동안 품고 있었던 속내를 꺼냈고, 이영하는 그의 말을 경청한 뒤 “미안했다”고 사과를 건넸다.
오은영 박사가 중심인 ‘결혼지옥’은 전문가가 세밀한 해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가 있다. 각 회차에 등장하는 사례는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어디선가 겪는 일일 수도 있다. 유사한 갈등을 겪는 당사자라면 해소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고, 단순 시청자일지라도 TV 속 전문가의 조언을 토대로 성숙한 관계를 만드는 핵심을 깨우칠 수 있다.
■자극적 에피소드로 피로 증가·사생활 보호 문제
물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점점 더 자극적인 사례가 예고편이나 본편에서 활용되는 양상을 띠기 때문. 이는 시청자에게 피로감을 선사하고 동시에 프로그램의 진정성도 하락하는 요인이 된다.
일례로 ‘결혼지옥’에서는 한 재혼 가정의 남성이 7살 의붓딸과 놀아주면서 ‘가짜 주사 놀이’라며 아이의 엉덩이를 손으로 찌른 부분이 방영돼 논란이 일었다. 의붓딸은 부적절한 신체접촉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새아버지는 이후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방송 후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엔 새아버지의 행동이 아동 성추행에 주장한다는 글이 잇따라 게재됐고, 새아버지는 관련 의혹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에 관해 ‘결혼지옥’ 제작진은 “부부의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해 아동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오은영 박사는 “촬영 중 아이가 싫어하는 신체접촉을 강압적으로 하지 말라는 내용을 여러 번 강조하고 교육적 지적과 설명을 했다”며 “5시간이 넘는 녹화 분량을 80분에 맞춰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많은 내용이 포함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출연자의 사생활 보호 문제도 있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노출되는 만큼 사생활이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 전문인력의 관리를 받는 연예인도 논란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일반인의 경우엔 오해 또는 논란을 풀지 못하고 피해만 남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일각에서는 프로그램 출연이 부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품는다. 오랜 기간 동안 다회성 치료를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상담이 일회성에 그친다는 점에서 효과가 미비할 것이란 지적이다. 한 예로 ‘결혼지옥’에서 남편의 폭행으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내의 사례를 다룬 ‘물불부부’로 출연했던 한 부부는 ‘당결안’에 ‘노랑부부’로 재출연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또 지난 2020년 결혼을 앞두고 채널A ‘아이콘탠트’에, 이듬해인 2021년 채널A ‘애로부부’에 출연한 개그맨 김경진-모델 전수민 부부는 최근 ‘결혼지옥’에 재출연해 다시 한번 갈등을 겪고 있음을 토로했다.
■해답은 진정성·방향성에 있다
이혼 예능은 향후 전보다 더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찾으며 시청자들을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의 늪으로 빠져들게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유튜브 등을 통해 ‘날 것’을 고스란히 담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대다수의 시청자는 더 이상 연출과 편집으로 정제된 영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곧 관찰 예능의 미래는 더더욱 자극으로 치닫게 될 것이란 걸 짐작하게 한다.
결국 관찰 예능의 미래는 콘텐츠 제작자에게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혼 예능의 본질인 상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 고발이 아닌 솔루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전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숙한 관계를 위한 조언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상담을 통한 치료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추적관찰이 뒤따르는 방식 등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착한 예능’으로 통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다. 해당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진과 오은영 박사가 함께 ‘금쪽이’를 선정하고 최소 한 달의 관찰 기간을 거친 뒤 솔루션을 진행한다. 또 프로그램 출연 후에도 금쪽이 부모와 제작진이 지속적으로 소통한다고. 그룹 ‘쥬얼리’ 출신의 방송인 이지현과 아들 우경의 경우, 방송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육아 방식과 자녀의 행동이 변화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줬다.
어떤 방식이 됐든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아닌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혼 예능에 필요하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자극이 아닌 진정성을 담을 수 있는 장치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맥앤지나=김지은 기자 magajina11@gmail.com]